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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의 경쟁률을 뚫고, 그들은 광부가 되었다
1963년 8월, 신문 한쪽에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꿔놓을 광고가 실렸다. 독일에서 일할 광부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조건은 20~35세, 60kg 이상, 1년 이상의 탄광 작업 경력자. 까다로운 조건임에도 얼마 후 지원서 접수처에는 광부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300명 모집에 3천 명이 넘는 이들이 지원한 것.
10: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이었다. 문제는 이들 중 실제 광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광부경험은 커녕 탄광 구경도 못해본 대졸자 비율만 24%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자격조건을 맞추기 위해 광부경력을 위조해 주는 유령회사가 생기기도 하고,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면접에 일부러 숯가루를 묻히고 가는 등 편법까지 등장할 지경이었다는데. 대체 왜,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렇게까지 광부가 되려고 했던 것일까.
■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국민, 기회의 땅으로 눈을 돌리다
1960년대,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1인당 GNP 87달러, 연간 물가상승률 42%, 실업률 23%. 수입은 적은데 물가는 치솟고 일자리는 없던 시절. 사람들은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버거워 더 나은 삶을 꿈꿀 여유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 등장한 독일 광부 모집 광고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당시 독일 광부의 월급으로 제시된 것은 600마르크(180달러)로 국내 임금의 8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딱 3년만 고생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독일이라는 선진국에 가볼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가난에 지쳐있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독일은 기회의 땅이었다.
■ 한국 최초의 해외인력수출,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
1963년 12월 21일, 123명의 젊은이가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3년간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1966년부터는 간호사·간호조무사들도 독일로 파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7년까지 7,936명의 광부와 1만 1057명의 간호사·간호조무사가 독일로 파견됐다. 이들은 독일에서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의 80% 이상을 한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 동안 이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모두 1억 153만 달러. 당시 총 수출액의 2%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러나 이 모든 화려한 숫자 뒤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낯선 땅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숨겨져 있다.
■ 글뤽아우프, 살아서 돌아오라!
희망에 차 도착한 독일에서 파독노동자들이 마주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광부들은 매일 40℃에 달하는 지하 막장에서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손톱이 빠지는 일은 예사였고 암반에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광부들의 아침 인사가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는 ‘글뤽아우프’였을 정도였다.
간호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거구의 외국인들을 돌봐야 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초과근무는 물론 다른 병원에서의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이 젊은이들을 이토록 일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국가는 왜 이 위험한 일터로 이들을 보냈을까?
■ 파독노동자들은 국가의 볼모였다? 차관담보설의 진실은?
독일 광부· 간호사 파견의 이유로 가장 유력했던 것은 차관담보설. 한국정부가 파독 노동자의 임금을 코메르츠방크에 예치하는 것을 담보로 독일로부터 상업차관을 받았다는 것이다. 1997년 백영훈 박사의 회고록으로부터 비롯된 이 설은 그동안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2008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는 차관담보설에 반기를 든다. 시기적인 모순은 물론 당시 은행기록이나 한국, 독일 정부의 기록을 봤을 때도 전혀 그 근거가 없다는 것.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국가는 국민을 볼모로 삼았던 것일까?
■ 파독 50년, 그들의 땀과 눈물을 이야기하다
광부들이 처음 독일로 향한 지 올해로 50년. 이들이 독일로 향했던 것은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했던 개인의 선택이었다. 그들은 그 자신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일했고 그랬기에 고된 삶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맺어낸 결실은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송금했던 돈은 외화가 귀했던 시기, 기초발전자금이 되어 경제성장의 마중물이 되어줬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노고는 잊히곤 한다. 그러나 그 개인들이 가진 고난의 역사가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이제 그 잊혔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이 영상은 2013년 5월 4일에 방영된 [다큐극장 - 글뤽아우프, 독일로 간 경제 역군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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